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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는 마음 속을 볼 수 있는 수중 카메라"...편지로 학교 폭력 해결하는 강경원 전 교장
“니내 들을 때리고 괴롭히지 않을깨. 그리고 나의 나쁜점을 꼭 고치도록 노력할깨.나를 깨닷개 해줘서 정말 고마워. 예들아 정말 미안해.”

비뚤한 글씨에 맞춤법도 엉터리인 서툰 문장들. 하지만 1993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동진이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다. 동진이를 반성케한 힘은 ‘편지’였다. 반친구들이 자신에게 보내온 편지에는 ‘괴롭히지 말아달라’ ‘친구들을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반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혔지만 동진이는 그것이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편지를 읽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됐다. 동진이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친구들에게 보낸 답장을 통해 “동진이의 단점을 지적해줘서 고맙다. 엄마의 충고도 잘 듣지 않았는데, 편지 덕분에 동진이의 행동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이 모든 일의 배경에는 수십년 교직생활 동안 꾸준히 ‘우정의 편지쓰기’ 를 실천해온 강경원(63) 전 성남 대하초등학교 교장이 있었다. 1993년부터 정년퇴임을 한 지난해까지 ‘우정의 편지쓰기’를 통해 수백명의 제자가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학교 폭력, 집단따돌림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편지는 큰 역할을 했다.

강 전 교장이 실천해온 편지쓰기 운동은 두가지다. 우선은 앞서 언급한 우정의 편지쓰기다. 반 전체 학생들이 한명의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1년 동안 학생 모두가 급우들에게 편지를 받게 되는 셈이다. 평소에 생활하면서 느낀 친구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적는다. 다 쓴 편지는 담임 교사에게 제출하고 교사는 편지를 가정으로 직접 보내 학부모가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아이는 친구들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교사는 학생 개개인에 대한 인성 교육과 생활지도에 도움을 받고, 학부모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학교 생활 속 자녀의 모습을 인지할 수 있다. 

강경원 선생님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20106

강 전 교장은 “편지는 수중 카메라와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교사에게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 이다. 우정의 편지쓰기 운동은 수면 아래 잠긴 빙산의 모습을 촬영하며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들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생활지도를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1992년 아침자습 시간 활용 방안을 고민하다가 “오늘은 1번에게 전부 편지를 쓴다”고 우연히 편지쓰기를 시작한 것이 수십년간 이 같은 프로그램을 실천해온 계기가 됐다. 그는 이제껏 제자들 수백통의 편지를 일일히 보여주며 “편지에 적힌 한두줄의 글만 봐도 아이들의 관계가 어떤지 금방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편지쓰기는 그가 교감이 된 1998년부터 시작됐다. 2-6학년 학생들에게 ‘교감 또는 교장선생님에게 편지쓰기’를 진행해왔다. 특기ㆍ취미ㆍ 장래희망, 또한 학교에 대한 건의사항 등 몇가지 관점을 주고 그 안에서 교장선생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탄 없이 적도록 한 것.

강 전 교장은 매년 아이들에게 받은 1000여통에 달하는 편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아이들의 작은 건의사항까지도 학교 운영에 반영하려했고, 편지에서 나타난 학생 개개인의 사정과 심리적 상태를 담임교사에게 전달하며 생활 지도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그는 2009년 교장 재직 시절 시 받은 5학년 여학생의 편지를 소개했다. 그 편지에는 “왕따가 없는 학교가 됐으면 좋겠다. 왕따를 도와주면 같이 왕따가 될까봐 친구들과 함께 놀린다. 나는 놀리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놀리게 되니 속상하다. 그 친구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그저 얼굴 때문에 왕따가 됐다. 그런 행동을 정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혀있었다.

강 전 교장은 “학교폭력이라는 게 시작은 사소하다. 쿡쿡 찌른다거나 지나가면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하는 아이는 재미로 하는데 당하는 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가 커지기 전 편지를 통해 아이들의 상태를 알게되면 부모와 교사가 곧바로 개입할 수 있다.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왕따 등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교사들의 노력을 더욱 강조했다.

강 전 교장은 “학교 폭력, 특히 집단 따돌림문제는 전인교육의 부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지적(知的)인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아이들의 심성이 메말라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선 온 동네가 나서야한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맞벌이가 많아지며 부모들은 아이를 돌볼 시간이 줄어들었다. 결국엔 교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의미”라며 “교직을 시작한 40년 전에 비해 교권이 많이 추락했지만 그래도 교사가 답이다. 아이들의 마음의 병을 고치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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