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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물질문명과 자본주의’…자본주의 지배원리는 경쟁이 아닌 독점
역사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분명 쉽게 오를 만한 산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20여년의 세월을 바친 이 역작은 국역본 6권이라는 분량만으로도 읽는 이를 압도한다. ‘물질문명 자본주의 읽기(김홍식 옮김/갈라파고스)’는 브로델이 1976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행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세 차례의 강연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상업 자본주의의 역사를 ‘장기 지속’의 관점으로 조명함으로써 그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여기서 장기 지속이란 심층에서 지속되는 삶의 요소를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이른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심층을 구성하는 것은 자급자족 차원의 물질문명이며, 그 위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상부구조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브로델은 자본주의의 지배 원리는 경쟁이 아닌 독점이라고 주장한다. 낮은 수준의 시장경제는 투명하게 굴러가지만 사다리 위쪽으로 갈수록 시장의 규칙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애쓰는 ‘반(反)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통 동네 수준의 시장에서 교환은 투명하기 마련이지만 대륙을 오가던 원거리 무역처럼 상거래 경로가 늘어날수록 규제와 간섭에서 벗어나기 쉽고 거래질서가 고도화될수록 시장을 교란시키는 독점의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속성을 독점과 불평등으로 파악하는 브로델의 관점은 자본주의를 영속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와는 궤를 달리한다. 자본주의는 위기에도 유연함과 적응력으로 살아남는 “머리가 100개쯤 달린 변화무쌍한 히드라 같은 존재”란 것이다.

저자의 통찰은 단순한 비관과 낙관을 넘어 자본주의의 냉혹한 실체를 직시하게끔 만든다. 강연이라는 이 책의 성격상 방대한 내용을 집약적으로 설명, 도저한 지적 세계를 탐험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김기훈 기자@fumblingwith>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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