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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문화를 이해하려면 도량형을 알아야”…‘측정의 역사’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인간은 시간, 거리, 무게 등 잴 수 있는 모든 것을 견주고 헤아리고 가늠하려 한다. 측정은 본능이자 생존수단이며 실존의 한 범주에 가깝다.

또 측정은 무미건조한 숫자만의 세계도 아니다. 폴란드의 경제학자 비톨트 쿨라는 말한다. “문화를 이해하려면 도량형을 이해해야만 한다.” 도량형은 한 사회가 만물을 해석하는 방식이자 그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측정의 역사’(노승영 옮김ㆍ에이도스)는 측정이란 렌즈로 조망한 인류의 문명사다. 저자인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P 크리스는 ‘현대의 바벨탑’이라 불리는 보편 측정 체계가 세계 각국에 뿌리 내린 것을 언어의 통일만큼 혁명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른바 ‘보편’의 배후에는 늘 정치가 있었다. 뼘이나 움큼과 같은 임시변통이 아닌 “표준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 권력, 즉 왕의 권위와 신의 위엄을 나타내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도량형은 곧 다스림이며 영주들은 도량형의 버성김을 악용해 사욕을 채우기도 했다.

프랑스의 미터법 역시 프랑스 혁명의 불길을 따라 번져나갔다. 도량형의 혼잡과 이로 인한 폐단은 ‘앙시앙 레짐’의 상징이었고, 프랑스 아카데미는 혁명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미터법을 보편 단위 체계로 삼자고 제안했다. 측정을 바로 잡는 것은 곧 선(善)이자 정의였으며 계몽과 인간성 고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처럼 근대 세계는 보편적 측정과 함께 태어났으며 측정이 세상을 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절대 측정을 위한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이토록 투명한 보편과 객관의 세계에 부작용은 없을까?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행복, 자존감, 교육수준처럼 근본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것까지 측정하려 들고 이것이 전부라고 착각한다”는 저자의 일침은 따끔하다. 나아가 우리는 수치에 사로잡혀 맥락을 잊거나 환경오염처럼 측정되지 않는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과하기 쉽단 것이다.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역사의 이면을 헤집어 드러내는 측정의 속살이 흥미롭고 생생하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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