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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유머감각 제로인 당신도…파리에 가면 사랑의 주인공
파리
샹젤리제 거리·몽마르트 언덕…
풍류·멋·낭만 곳곳에 넘쳐 흘러
영화감독들 이유있는 파리예찬

“파리는 마음의 축제로 남을 것”
소설가 헤밍웨이 아낌없는 극찬


주차지옥인 건 그곳도 마찬가지다. ‘동네가 지랄 같다’고 불평하며 주차 자리를 찾지 못하던 중년 남자. 주위를 걷는 연인들이 시야에 걸리자 “난 얼굴도 괜찮고 성격도 좋고 유머도 있는데, 왜 여자가 없는 거야?”라며 투덜댄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자가 보도 위에 쓰러지고, 남자는 그녀를 자신의 차에 데려와 누인다. 사랑이 시작된다. 강변에서 뭇 여인들을 흘끔이던 프랑스 소년의 눈이 커진다. 아랍계 소녀의 얼굴이 가슴에 꽂힌다. 소년의 사랑도 시작이다. 미국인 관광객이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에게 푹 빠졌다. 알고보니 여인은 뱀파이어였다. 아내를 늘 피곤하게 하는 유머감각 제로의 남편, 묘지에서 대문호 오스카 와일드에게 한 수 배운다. 무려 20명의 세계적인 감독이 파리의 행정구역 곳곳을 무대로 18편의 단편을 연출, 옴니버스로 묶은 영화 ‘사랑해, 파리’ 속 에피소드들이다.

누구의 입에서나 언제든 ‘주 탬므(Je t’aime)’라는 아름다운 울림의 문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도시. ‘사랑해, 파리’는 환상과 현실, 낭만과 농담 사이의 파리를 보여준다. 소심한 미국인 관광객이 ‘관광가이드북’ 속의 도시와 자신이 마주친 파리 사이에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좌절하는 곳이기도 하고, 젊은 이민자 여성이 자신의 아기는 보육원에 맡기고 다른 이의 자식을 돌봐야 하는 아이로니컬한 생존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1950~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의 ‘마지막 지하철’은 나치 치하 몽마르트 극장을 무대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연극단원들의 열정과 사랑을 그려냈다. 예술과 반란의 도시. 또 다른 누벨 바그의 대표감독 아네스 바르다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한 샹송 가수가 최종 진단을 앞두고 곳곳을 다니며 본 파리를 그려낸다.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찬사를 얻은 작품이다. 이렇듯 파리는 영화감독들의 도시였다. 클로드 샤브롤, 장 뤽 고다르 등 6명의 프랑스 감독은 1965년에 이미 옴니버스 영화 ‘내가 본 파리’를 만들었다. ‘파리의 연인들’ ‘파리의 여인’ ‘파리의 랑데부’ ‘사랑을 부르는, 파리’ 등 셀 수 없는 영화가 파리에서 촬영되고, 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크린에서 본 에펠탑과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카페 드 플로르, 몽마르트 언덕, 센 강, 퐁 네프가 관객들에게는 늘 어제 둘러보고 막 돌아온 여행지같이만 느껴진다. 


수많은 예술가가 파리에 찬사를 보냈다. ‘노인과 바다’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만일 당신이 젊은 시절에 파리에서 살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면, 여생에선 어느 곳을 가든 파리는 마음의 축제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랑해 파리’에서 유령으로 나타나 유머감각을 뽐낸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역시 재치 넘친 한 마디로 파리의 모든 것을 표했다. “선한 미국인은 죽어서 파리에 간다.”

프랑스의 시인 장 콕토는 “파리에선 누구도 구경꾼으로 남아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누구나 주연배우를 꿈꾼다”고 했다. 독설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이자 여류 비평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미국은 조국이지만, 내 고향은 파리”라는 말로 애정을 담아냈다.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컬 작곡가이자 재즈 뮤지션 콜 포터는 ‘사랑해 파리(I love Paris)’라는 노래를 헌정했다.

미국의 거장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제까지 나온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파리에 대한 찬가이자 클래식 예술에 대한 유쾌한 헌사다. 주인공 길 펜더는 잘나가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였지만 막 순수문학으로 전향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노천카페에 앉아 글을 쓰던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하는 남자다. 약혼녀와 함께 파리여행을 간 그는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자정을 맞아 우연히 차를 얻어 탄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한 파티장. 한 사내가 스콧 피츠제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진짜? ‘위대한 개츠비’의 그 작가? 그렇다. 그는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간 것이다. 피아노 앞에선 콜 포터가 노래를 부르고, 스콧 피츠제럴드는 ‘절친’을 한 명 소개해주는데,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헤밍웨이는 주인공을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으로 끌고 가 파블로 피카소를 인사시켜주고, 그 일행들과 1차, 2차, 3차 술자리를 거듭하던 중 한 주점에서는 마크 트웨인을 만난다. 옆자리에서도 열띤 토론이 오간다. 누군가 쳐다보았더니 흥에 겨운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영화감독 루이 부뉘엘과 사진작가 만 레이를 상대로 열심히 떠들고 있다. ‘초현실주의’의 방언으로 말이다.

압권은 길 펜더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간을 거슬러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좋은 시대’라는 뜻으로 풍요와 예술이 넘쳐났던 파리의 19세기 말을 가리킨다)’에서 마주친 고갱의 말 한 마디다.

“이 세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어, 르네상스 때야말로 최고의 시대였지!”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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